자유, 그 생명의 빛

 

 

1. 설교 개관

제 목

자유, 그 생명의 빛

본 문

4:12-17

교회력

주현절 후 두 번째 주일

요 지

자유는 곧 행복이다. 자유하지 않은 사람이 행복을 말할 수 없고,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자유를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그렇게 자유 한 것인가. 정말 그렇게 행복하냐는 말이다. 성경의 말씀을 진리로 믿는다면 이 질문을 피해갈 수 없다. 성경이 말하는 자유란 무엇일까. 전혀 자유롭지 않게 느껴지는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도대체 우리에게 어떤 자유가 주어졌다는 것일까.

사람들은 자유가 어떤 조건들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외모를 가지는 것이, 더 많이 배우는 것이, 더 많이 버는 것이 자유의 조건 즉 행복한 삶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우리의 삶에 약간의 유익을 줄 수는 있어도 궁극적인 자유를 줄 수는 없다. 우리 모두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적인 자유를 넘어서는 진정한 자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이 땅의 삶의 조건들에 메여 부자유하고 불행하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참 자유는 어떤 조건을 통한 일시적인 변화가 아닌 질적 변화 즉, 존재의 변화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부자유하고 불행한 근본적인 이유는 어떤 조건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된 죄인의 실존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단절,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생명으로부터 단절 곧 사망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가 바로 이 생명이다. 우리 스스로 잃어버렸고 끊어졌던 그 생명이 우리에게 다시 주어졌다는 말이다.

인 용

갈라디아서 5:1, 5:14

일 시

2012.01.15

대 상

많은물교회 중고등부

 

 

2. 본문의 구성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3. 설교 : 자유, 그 생명의 빛

 

     오늘은 자유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합니다. 자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사실 행복에 대해서 말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행복이란 단어를 보통 우리의 실제 삶과는 동떨어진 딴 나라 얘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별로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유라는 단어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겠지요. 하지만 인정하든 않든 우리는 무언가를 추구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자유에 대해서 말해봅시다. 자유에 대해서 말하다, 행복을 말하고, 다시 자유를 말하니 조금은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군요. 자유와 행복을 동시에 말하는 까달은 이 둘이 사실상 본질적인 의미에서 서로 동일하거나, 적어도 아주 긴밀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자유가 없는 행복을 생각할 수 없고, 행복이 없는 자유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자유가 보장 되지 않은 사람에게 당신은 행복합니까?”라고 물을 수 없습니다. 그는 자유가 없으므로 이미 불행하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사람에게 당신은 자유 합니까?”라고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행복하다면 이미 자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유라는 말과 행복이란 말을 동시에 사용해도 좋겠지만 그렇게 하면 헷갈릴 수도 있으니, 여기서는 자유라는 말을 주로 쓰려고 합니다. 다만 자유라는 것을 그저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정도로 생각하지 말고 우리 삶의 진짜 행복을 위한 의미에서 이해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자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갈라디아서를 보면 이것이 잘 나타납니다. 갈라디아서 5:1을 보면 이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렇습니다. 또 봅시다. 같은 장 13절에서는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절들은 갈라디아서 말고도 다른 데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도대체 성경이 말하는 자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어디를 봐서 이 말씀처럼 자유 한 것인지요.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지요. 성경이 그렇다고 하니까 우리는 그냥 그렇다고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요. 그런데 사실 우린 이런 고민조차 별로 하지 않지는 않나요. 만일 그렇다면 그건 아마도 다음 두 경우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하나는 성경이 말하는 자유가 무엇인지 알고 그 자유가 자신에게 주어졌음을 아는 경우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경의 말씀을 진리로 여기면서도 실제로는 자신과는 별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경우가 전자라면 다행이지만, 만일 후자의 경우라면 우린 오늘 조금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아야 합니다. 참된 믿음은 성경의 말씀에 대해서 단지 지적인 동의처럼 그렇다’, ‘그럴 수도 있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진짜 삶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자유가 무엇인지 이해해보기 위해서 이런 예를 들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가끔 인생을(이렇게까지 거창하게 말하지 않고 그저 산다는 것은이라고 말해도 되겠지요) 산에 오르는 것에 비유하곤 합니다. 산에 오르다보면 아주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평지를 만나기도, 때론 내리막을 만나기도 합니다. 숨 가쁜 깔딱고개를 만나기도하고, 못 오를 것 같은 암벽을 만나기도 하지요. 가끔은 옹달샘을 만나서 꿀 맛 같은 물 한바가지를 들이키기도 합니다. 사는 것도 그렇지요. 그걸 한 문장으로 깔끔하게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만 해도 우리는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으니까요. 저만 해도 바로 이 자리에서 자신감과 당혹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고 말입니다. 여러분도 어쩌면 은혜와 졸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우리의 삶에 성공과 실패가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정말로 마치 큰 산 하나를 오르는 것과도 같습니다.

 

     자,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 산을 잘 올라갈 수 있을까요. 무엇이 있으면 도움이 되겠습니까. 등산장비들을 구입하면 좋겠지요. , 가방, 지팡이도 하나 있으면 좋고, 신발은 거의 필수 아이템입니다. 그런데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등산장비 가격이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제대로 장만하려면 1-200만원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합니다. 여유가 있는 어른들에게는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학생신분의 우리들에게 그것이 어디 누구 이름 부르듯이 말할 수 있는 액수입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부도 해야 하는데!, 언제 일해서!, 어떻게 벌고!, 또 어떻게 장비들을 마련할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그 고생을 생각하면 말입니다. 결국 꽤 많은 격차가 벌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누구는 꽤 빨리 장비들을 모으고 또 어떤 사람은 한참 뒤처지겠지요. 돈 버는데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 다른 수 있습니까. 몸으로 때우는 것이지요. 열심히 운동해서 등산하기에 적합한 체형으로 만들어야지요.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산도 올라가본 사람이 잘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운동신경이 둔한 사람은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또 태어날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니, 극단적으로 돈도 못 벌고 운동도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뭐, 좋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지금 등산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단지 등산을 비유로 들어서 말하는 것이니까요. 인심을 쓰겠습니다. 이렇게 가정합시다. 여러분 모두 등산장비를 구입했다고 합시다. 그것도 아주 고가의 최고급 아이템들로 말입니다. 그리고 운동도 아주 충실히 해서 몸도 튼튼해졌다고 합시다. 마치 산을 뛰어서 올라가기라도 할 듯이 말입니다. 그럼 이제 여러분은 저 산을 아주 자유롭게 올라갈 수 있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산에 오르는 것이, 그러니까 사는 것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또는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언가를 가지지 못해서라고 믿는다면 대답해 봅시다. 다시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좋은 몸도 가지고 있고 좋은 장비도 가지고 있으면 저 산을 자유롭게, 행복하게 갈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요. 맞습니다. 그런 것들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빈약한 맨 몸으로 산을 올랐던 때에 비하면 아주 자유롭게 된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만일 빛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빛의 존재를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빛은 항상 저기에’, ‘그렇게있으니까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냐는 말입니다. 저 빛이 사라지는 순간 여러분 앞에는 캄캄한 어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절한 절망이 찾아옵니다. 아무리 뛰어난 장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아무리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혹 장비 중에 라이트를 켜면 되지 않느냐고 질문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굉장히 스마트한 지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저의 비유를 너무 실증적으로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우리는 지금 등산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모든 빛이 없다고 가정하자는 말입니다. 빛 자체가, 그 존재 자체가 없다고 생각해보자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자유하십니까. 꼼짝 못하고 있다면, 여러분의 조건들이 보장해주었던 자유는 어디로 간 것입니까. 빛이 없으면 아무리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도 평지조차 단 한발을 자유롭게 내딛지 못합니다.

 

     앞에서 제가 한 이야기는 우리의 삶에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어떤 조건들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물론 그런 것들이 약간의 도움이 되는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착각하는 것이지요. 조금 더 노력하면, 조금 더 고생하면 그래서 무언가를 가지고 이루어내면 자유가 주어질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는 이미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유명한 연예인들이, 훌륭한 정치인들이, 대단한 기업가들이 우리들보다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명한 연예인들이 마약을 하고 어느 날 갑자기 자살을 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훌륭한 정치인들이 결국엔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대단하던 부자들이 늘 상 돈 때문에 근심하다가 하루아침에 망한 소식을 적잖게 들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자유해보였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린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이런 것들을 계속해서 추구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방금 말했던 것과 같이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가, 또는 행복이 어떤 조건들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자유하지 못한 이유는 어떤 조건이 없어서가 아니라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빛이 없기 때문이다.’ , 자유는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하지 못한 것은 무엇을 가지지 못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앞을 볼 수 없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인간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어서 죄인 된 실존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 불행하고 끝없이 부자유한 이유는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너무 윤리적인 측면에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무슨 나쁜 짓을 저질렀다는 얘기 정도가 아닙니다. 죄인이라는 말은 보다 실존적인 표현입니다. 죄인, 즉 우리가 죄의 결과 때문에 반드시 사망에 처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아직 젊기 때문에, 아니 젊다고 하기보단 어리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 별로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 그리고 예상치 않은 때에, 또 생각보다 빨리 그것이 우리 앞에 다가와 있을 것입니다. 생각해봅시다. 여러분이 만일 내일 죽는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등산 비유에서 했던 것처럼 가정일 뿐이니 원하는 대로 다 해드리겠습니다. 예쁜 외모를 원하시겠습니까. 그래서 누구랑 결혼이라도 하겠다는 것일까요. 못다 먹은 맛있는 음식을 먹겠습니까. 그래서 한 100인분이라도 먹겠다는 것일까요. 수억 원의 돈을 요구하시겠습니까. 그래서 그것으로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말입니까. 죽음 앞에서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산 속에서 빛을 일어버린 사람에게 무슨 등산장비가 도움이 되겠습니까. 오직 빛이 필요하지요. 우리에겐 오직 참 된 생명이 필요할 뿐입니다.

 

     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오늘 설교의 결론을 맺으면서 오늘 읽은 본문을 살펴봅시다. 본문의 이야기는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마가복음 1장의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 받으시는 장면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초기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 12, 13절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힌 시점에 예수님의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주로 활동하신 무대는 갈릴리 호수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사실 굉장히 큽니다. 그래서 바다라고까지 불릴 정도였지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활동하신 갈릴리 호수 주변은 사실 굉장히 넓은 지역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예수님은 가버나움이란 도시에서 자주 머무시면서 활동을 하셨습니다.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그런데 본문 14-16절 말씀을 보십시오. 성경의 기자는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빛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16절 말씀이 아주 핵심입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에게 큰 빛이 비추었다고 말합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을 또 다시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이라고 반복해서 기록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의 기자는 당시의 사람들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아주 정확하게 꽤 뚫어보았습니다. 그들이 자유하지 못하고 불행한 이유는 그들에게 어떤 조건들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이 말은 그들에게 삶의 어떤 조건들이 풍부하게 주어졌다는 말이 아닙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만큼 그들에게 치열한 것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기자는 그것이 그들의 삶의 문제의 핵심이 아님을 알아본 것입니다. 그들의 문제는 흑암, 즉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흑암을 다시 사망이라고 표현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다른 것 때문이 아닌 생명이 없음으로 인한 캄캄함입니다. 한 마디로 그들에게 생명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마치 빛을 잃은 사람처럼 방황하고 고통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런 그들에게 빛이 비추었다고 합니다. 어떤 빛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빛입니다. 사망의 어둠을 깨뜨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예수그리스도께서 전하신 말씀이, 그 복음이 바로 그 빛입니다. 생명입니다. 우리의 자유입니다.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 안에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예쁜 얼굴이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갑자기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로또를 사면 1등에 당첨되거나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여러분이 느끼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보일지도 모릅니다. 그 말은 여러분이 느끼기에는 여러분의 삶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때문에 더 나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자유롭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고, 불행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말에 속지 마십시오. 어떤 화려한 삶이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란 말에 순수하게 속지 마십시오. 제가 이렇게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 진실임을 기억하십시오. 성경의 말씀이 진리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들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나무 십자가에 내 놓기까지 하신 이의 그 삶을 온전히 신뢰하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은 다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예쁜 얼굴도 언젠가 늙어버리지만, 똑똑한 것도 언젠가 다 사라지지만, 생명이 끝날 때면 1원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항상 자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4. 주일 아침에 함께 드리는 기도

 

주님, 저희들이 자유 한 사람임을 깨닫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들은 자유가 어떤 조건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잠깐 있다 사라지는 것이지요. 주님은 저희들에게 다른 자유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주님은 빛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조건이 아니라 존재라는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빛이라는 것, 존재라는 것은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주님이 생명의 빛을 비추셨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주님의 생명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말이지요.

     사랑하는 주님, 그래서 저희가 오직 주님만 사랑합니다. 당신께만 예배합니다. 찬양합니다.